레너드 맥코이는 하품을 쩍 하고 정수리를 북북 긁었다. 그는 아구구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쫘악 폈다. 그의 나이는 아직 젊은 20대였지만, 반복되는 야근은 그에게 나이를 벗어난 피곤함을 불러 일으켰다. 레너드는 마지막 문서 작업을 하던 파일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그의 열정적인 타이핑에 살짝 뜨거워진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만세. 그는 그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만 했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와 서류가방 등을 챙기며 집으로 가는 길에 어느 카페에 들를까 생각에 빠졌다. 그는 좁은 사무실을 나와 하얀 형광등이 비추는 저녁의 병원 복도를 걸어갔다. 그처럼 일찍 퇴근하는 몇몇 간호사들이 그에게 인사했고, 레너드는 나름 반갑게 응수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야근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에 그는 기뻤던 것이다.


이제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지평선 너머로 꺼지고 있었다. 레너드는 햇살로부터 서서히 식어가는 자동차 운전석의 문을 열고 착석했다. 유난히 새카만 핸들은 조금 뜨거웠다. 그는 만족스럽게 손 안에 부드럽게 차오르는 열기를 느끼며 시동을 걸었다. 차는 부르릉거리며 출발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오후라 그런지, 사실 별로 상관없는 말이기는 했지만 레너드는 그 두 가지가 사람들이 거리에 별로 나다니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레너드는 앞에 매달린 전자시계의 시침이 이제 막 7시를 넘었음을 보고 최단거리로 갈 수 있는 카페를 고르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아니야, 거긴 가격만 졸라 비싸고 맛은 없어. 던킨 도너츠? 아니야, 거긴 가면 무조건 도넛도 고르게 된단 말이지......최근에 나이에 걸맞지 않게 튀어나오는 배를 걱정하기 시작한 그는 망설임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네다섯번이나 밥도 거르면서 외과 수술에 들어가는데, 왜 그렇게 배는 나오나 몰라. 그는 한동안 그 이유를 자각하진 못했지만 곧 그는 그것이 수술 이후 와구와구 먹어대던 버거킹의 슈퍼사이즈 때문임을 깨닫고 자제하려 애쓰고 있었다. 레너드는 심란한 표정으로 차를 돌렸다. 이젠 진짜로 정해야 할 순간이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양옆에 떡하니 버티고 선 스타벅스와 던킨 도너츠를 번갈아 보았다가, 결국 마지막 코너에서 과감하게 스타벅스를 향했다. 초록색 메두사의 형상을 한 여자가 환영한다는 듯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레너드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차를 주차시키려 했다.


아아, 차라리 눈에 띠지 않았더라면. 길가의 수풀 사이에서 웅크리고 있던 형체를 본 레너드는 몇 분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그 소년-또는 갓 대학생된 성인-을 처음 봤을 때는 아니었다. 그저 매우 급했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봐요!"




스타벅스고 뭐고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 레너드는 차를 멈춰세웠다. 그는 수풀과 도로 경계 사이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몸을 웅크린 금발의 남자에게 달려갔다. 남자는 끔찍한 동시에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고통스럽게 말고 있었다. 레너드는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물었다.


"괜찮아요? 정신이 들어요?"

"도와주세요!"


레너드가 들은 것은 죽기 직전 단말마의 외침 비슷한 무언가였다. 그는 응급실에 실려오던 몇몇 환자를 생각했고, 방금 들은 소리가 그들의 비명과 흡사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제야 레너드는 남자가 왜 그렇게 처절한지, 왜 그렇게 웅크리고 있는지 깨달았다. 남자가 입은 낡은 봄버재킷 아래에서, 무엇인가가 뚫고 나오려는 듯, 아주 징그러운 움직임으로 꿈틀거리는 것이 있었다.


"제발......제발요. 전 집에서 쫒겨났어요. 병원비가 없어요. 제발......"

"진정해요. 난 의사에요. 일단 병원까지 옮겨줄......"

"아아아악!!!!"



순간적으로 재킷 밑의 것이 크게 꿈틀거리더니, 피가 왈칵 하며 옷 밑으로 쏟아져 내렸다. 남자는 비명을 지른 것을 끝으로 눈을 하얀색으로 뒤집고선 손 끝을 발발 떨면서 경련을 일으켰다. 레너드는 뮤턴트의 형질 발현이 지금 자기 눈 앞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깨닫곤, 망설임없이 재킷을 벗겼다. 참혹한 등이 드러났다. 날개로 보이는 것이 피를 잔뜩 머금고 피부 밑에서 강제로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다. 레너드는 급히 핸드폰을 찾았지만 욕을 크게 내뱉었다. 차에 두고 온 것이다. 그가 재빨리 차로 달려가려는 찰나, 근처를 조심스럽게 걷던 한 여자를 발견했다. 레너드가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다급하게 말했다.


"구급차 좀 불러줘요, 지금 저기 사람이 형질 발현을 하고 있......."


여자는 머뭇거리다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뮤턴트잖아요."

"그래서요?"

"그러니까......"


레너드는 그녀를 무시하고 차를 향해 달려갔다. 쓰레기들, 인간 말종. 다 뒈져라, 저런 차별주의자 같으니라고. 그는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가며 구급차를 불렀고, 폰을 내던지듯 닫고서 남자에게 다시 달려갔다. 그리고 그는 문득 깨달았다.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죽을 거라는 것을.


"정신 차려요!"


출혈에 의한 쇼크. 죽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빨갛고 위압적인 커다란 날개 한 쪽이 젖어있는 채로 얇게 비치고 찢어진 피부 아래에 놓여있었다. 레너드는 망설였다. 의사로서 그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이 무엇인가?


"이봐요, 좀 아플 거에요."


의미 없는 말이긴 했지만, 그래도 말해주는 편이 나았다. 차에서 늘 가지고 다니는 브랜디 한 병을 가져온 그는 일단 눈이 뒤집힌 남자의 입에 술을 흘려넣었다. 그는 이것이 도움이 되길 빌었다. 그리고 그는 외투 안주머니에서 가끔 몰래 피는 담배를 위한 라이터와 다용도 주머니칼을 꺼냈다. 그는 라이터 불 끝에 칼을 달구기 시작했다. 레너드는 자신이 이렇게 원시적으로 시술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눈앞의 현실이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칼 끝을, 그는 날개가 솟아나오려 하는 등에 갖다댔다. 레너드는 눈을 감고 싶어하는 본능을 이성으로 억누르며 심호흡했다. 난 의사야. 어서 째버려. 똑바로 보고.




검붉은 피가, 이상하리만치 새하얀 두 날개와 함께 솟아올랐다. 









제임스 T. 커크라는 신상이 확인된 갓 스무 살의 남자는 응급실 침대에서 언제 발작을 일으켰냐는 듯 곤히 잠들어 있었다. 옆으로 돌아누운 그의 등에는 하루 전에 돋아난 하얀 날개 한 쌍이 병원 불빛을 받아 얌전하게 갈무리되어 있었다. 그를 지켜보는 레너드에게 응급실 담당 의사가 말했다.


"원래 뮤턴트들은 형질 발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대부분 안정되요."

"......."

"정말 운이 좋은 거죠. 근데 집에서도 찾으려고 하지 않으니......."


레너드는 남자가 한 말이 떠올라 괜히 입술을 삐죽거렸다. 집에서 내쫒겼다. 망할 차별주의자들. 응급실 담당 의사는 휙 떠나버렸고, 레너드는 청년의 거대한 날개와, 그의 한 쪽 팔에 꽂힌 수액주사를 바라보았다. 그의 등에서 분수처럼 솟은 피와, 동시에 펼쳐진 날개를 그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날개는 잔혹했지만 아름다웠다. 아브락사스가 알을 깨는 고통을 겪지 않고선 새가 될 수 없었듯이.


근데 저 날개, 날 수 있는 건가?  레너드는 문득 떠오른 궁금증을 세차게 고개를 젓는 것으로 지워버렸다.








다음 편을 쓸 수만 있다면 쓸 것이다. 벤술루도 쓰고 스후라도 쓸 것이다......쓸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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