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다. 리지가 그녀를 보고 처음 한 생각이었다. 새까맣다. 그녀의 머리칼과 눈은 새카맣다. 지금껏 수많은 검은색을 봐왔지만, 수많은 머리카락을 보았지만 그런 색도, 머리칼도 처음이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리지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 순간 누가 봤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리라 겁을 먹고는 시선을 앞에 놓인 샌드위치로 돌렸다. 그리고 그 샌드위치의 앞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꽤 값이 나가 보이는 정장을 빼입은, 소개 받은 남자였다.


"책을 좋아하신다고 했는데, 무슨 책을 좋아하세요?"

"네?"


리지는 당황하며 다시 물었다. 말을 놓쳐 버렸다. 남자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무슨 책을 좋아하세요?"

"아, 네. 저는......"


리지는 샌드위치를 깨물며 생각했다. 내가 무슨 책을 좋아하더라?


"판타지는 싫어해요."

"좋아하는 걸 물었는데."

"싫어하는 걸 제외하다 보면 좋아하는 게 남겠죠."


딱 잘라 대답한 리지는 천천히 샌드위치를 씹으며 고민했다.


"저는 판타지의......그런 메시아적 구조를 사용하는 걸 매우 싫어해요. 전 아무래도......제인 에어나, 아그네스 그레이 같은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폭풍의 언덕도요?"

"그렇네요. 이제 보니 전 브론테 자매를 좋아하는군요."


남자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리지의 시야 끝에는 계속해서 검은색이 걸렸다. 리지는 머뭇머뭇거리며 그 색을 곁눈질 했고, 카페의 창가에 앉아 밖을 멍하니 응시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눈과 머리카락과는 반대로, 피부는 대리석으로 만든 것 마냥 창백했다. 턱을 괴고 있는 손가락과 손목은 마치 자기 주장을 하듯, 아크로바틱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그들 모두가 겨울의 나뭇가지마냥 까만색이었고 동시에 하얀색이었으며, 부러질 듯 말라있었다. 리지는 그녀의 손목을 가로지르는 청록의 정맥을 볼 수 있었다. 리지는 무언가 깨달았다. 그녀는 나무였다. 겨울의 나무. 길가에 서 있는, 한 그루의 겨울나무.


"저......어디 불편하세요?"

"아니요."


리지는 자기 입에서 반사적으로 나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침묵이 흘렀고, 리지의 시선은 남자의 어깨 너머 그녀에게 꽂혀 있었다. 그녀에게선 미성숙한 소년미가 풍겨져 나왔다. 그건 향수와도 같은 느낌이라 깨달은 후에는 점점 강해지는 어떤 것이었다. 그 향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진짜 향수를 뿌렸는지도 모른다. 살짝 달라붙는 켈빈 클라인 브이넥 티 사이로 보이는 단단한 쇄골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쇄골은 그녀를 지탱하듯 아주 단단하게 어깨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줄기. 의자에 앉아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나무였다. 그녀는 검은색 잎사귀를 리지에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손짓하고 있었다. 


-안녕-


중얼거리는 목소리였다. 리지는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잎의 단 하나 뿐인 기공이 말하고 있었다. 숨을 들이쉬고 뱉으면서 단어를 만들었다. 검은 눈과 하얀 피부가 리지를 바라본다. 깊다. 광막하다. 막막하다. 진실한 검은색과 순결한 하얀색, 이들이 이 순간의 어린 소년과 소녀와 나무를 만들고 있었다. 리지 앞의 남자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리지는 그를 잊고 있었다. 이때만큼은, 당신이,


-안녕-

-안녕-

-이름이 뭐에요?-

-시간 되나요?-

-우리 만날까요?-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을래요?-


남자가 떠났다. 리지는 이제 그녀와 눈을 완전히 마주치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비틀어 씨익 웃었다. 쇄골이 꿈틀거렸다. 그녀는 살아나고 있었다. 남자는 카페 문을 열고 나갔다. 그의 발소리는 문의 저 너머로 멀어졌고, 몇 번 아우성을 치는 듯 하다가 사라졌다. 광막함. 막막함. 굳건함. 그녀가 말하는 바는 확실했다. 그리고 나무는 생동감을 되찾고 있었다. 굳어있던 몸을 풀어 기지개를 폈다. 나무의 앞에는 아몬드 소스 치킨을 끼얹은 브리오슈와 아메리카노가 있었다. 쓰지 않을까? 아니다, 좋아하니까 마시겠지. 나무는 가지를 뻗어 아메리카노 잔을 매만졌다. 물을 달라는 것일까?


-안녕-


이리 와요, 어서. 내게 물을 주세요.


-햇빛은?-


그것도 당신이 주면 되지 않을까요?

조금만 가지를 쳐주고, 날 조금만 움직이게 해준다면.


-그것보다 조금만 더-


뭘 원하죠?





사랑. 당신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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