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레예스는 머리에 썼던 써로게이트 헬멧을 벗었다. 밤새 야근을 했던 그에게 더 이상의 신경 접촉은 무리였다. 귓가에 남아있는 이명이 사라질 때까지, 그는 푹신한 쿠션의자에 기대 앉아있었다. 다행히도 오늘은 주말이었다. 경찰인 그는 게이트 접속을 끝내기 전 동료와 교대했는데, 곧 그의 행복한 주말을 막는 이는 없을 것임을 뜻했다. 몇몇 정신 나간 클럽 양아치들을 상대해야 했던 그에게 교대와 주말의 운 좋은 일치는 쉽사리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귀찮음에 어제 저녁을 걸렀던 그는 위장에 스르르 감도는 시장기를 느꼈다. 식사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부엌을 생각하면서 그가 몸을 일으키자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며칠 내내 게이트를 이용하면서 계속 누워있던 탓이리라. 그는 뉴스에서 보도된 써로게이트의 부작용을 떠올렸다. 상습적인 기립성 저혈압, 공간지각능력과 오감의 퇴화. 대인기피증. 우울증. 자살. 


대인기피증, 우울증, 자살. 그는 세 가지 단어를 곱씹다가 머리를 휘저었다. 그건 자기 자신을 위안하기 위한 태도는 아니었다. 그는 맞은편의 굳게 닫힌 방문에 시선이 가는 것을 자제하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정리하지 못한,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던 탓에 등과 엉덩이 부분이 살짝 닳기까지 한 나이트 가운 자락이 그의 발목에서 흩날렸다. 부엌의 창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그는 또다시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번에는 찡-하는 두통까지 동반한, 그다지 반가운 녀석은 아닌 존재였다. 그는 이것이 말 그대로 써로게이트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냉장고 위치까지 제대로 기억 못 하는 자신이 완전히 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래도 경찰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노망난 노친네는 아니었다. 


냉장고가 파란색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파란색 벽지에 감춰져 있었던 냉장고를 연 그는 잠시 황무지 같아 보이는 텅 빈 내부에 멈칫했다. 하지만 우유 한 통과 구석에 처박혀있는 시리얼은 있었다. 그는 두 가지의 음식을 꺼낸 다음 뒤에서 기척을 느꼈다. 그 기척의 주인은, 자신이 써로게이트에서 나오게 하는 이유인 동시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


그가 건넨 인사에 그의 배우자가 응대하지만 그건 그저 형식적인 말 뿐임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세월의 흐름에 검은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짧은 앞머리 사이로 배우자의 형체를 볼 수 있었다. 젊은 시절의 금발벽안 그대로였다. 미남은 잡티 하나 없는 피부를 햇빛에 비추며 탭으로 게임 비슷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그에게 무어라 말할 필요성을 느꼈다. 


"잭."

"응?"


잭 모리슨은 자신에게 관심을 쏟고 싶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가브리엘은 그가 최근에 탭으로 하는 랜덤 채팅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걸었다.


"이제 곧 여름인데, 휴가나 갈까?"

"더워. 싫어."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잭은 무엇을 보았는지, 또는 읽었는지 혼자서 킬킬거리고 있다. 가브리엘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참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써로게이트 쓸 거잖아."

"그거 쓴다고 안 더운 건 아냐."


다시 할 말이 없어진다. 가브리엘은 혼자서 웃고 있는 잭을 뒤로하고 유리로 된 볼을 찬장에서 꺼내 시리얼을 부었다. 하얀 우유도 더했다. 그는 소용돌이치는 갈색과 하얀색의 용오름을 바라보았다. 갈색의 기류가 하얀색으로 가라않아 습기를 먹어 눅눅해지고 말았다. 그는 아무도 듣지 않을 것 같은, 푹 눌러붙은 시리얼에 대고 외쳤다. 


"지금도 쓰고 있잖아!"

"그래서?"


잭은 그가 외치든지 뒹굴든지 쓰러지든지 한결같이 무심할 것이다. 가브리엘은 시리얼에서 눈을 떼고 젊은 시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잭에게 시선을 돌렸다. 잭이 힐끗, 곁눈질로 그를 바라보았다. 


"집에서만이라도, 당신 얼굴 좀 보면 안돼?"

"왜?"

"당신 방에 쳐박혀서 나오지 않은지 벌써 3년 째야."

"근데?"

"이게......정상이야? 난 당신 젊을 때 모습을 하고 있는 로봇하고만 말을 하는데?"

"그럼 이혼해."


가브리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잭이 목소리를 높였다.


"난 제시가 그렇게 된 이후로 당신하고 살 자신 없어. 이혼하자고!"


잭은 망설임없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방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가브리엘은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았다. 햇빛은 지나치게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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