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부질없이 흘러갔다. 그 말인 즉슨, 잭의 직장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매일매일 바뀌며 절대 늦춰지지는 않는 출근시간, 그와는 반대로 조금씩 늦어지기만 하는 퇴근시간, 그리고 이상한 업무들, 괴상한 지시사항들. 그것들은 잭이 출근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서,


"자주 가는 그 카페의 티라미수 사다 놔." (그 카페가 어디지?)

"세바스찬 목걸이 사와." (세바스찬이 누구인고 하니 레예스의 애완견이었다.)

"내 구두 사와." (도대체 무슨 종류로 구두를 사오라는 거지?)

"내가 버린 머그컵 찾아와."(?!)

"그 티백은 대체 어딜 간 거야?"(티백이라니?)

"베르사체 향수병은 왜....."

"네 눈썹은 왜 그 모양 그 꼴....."

"네 얼굴은 왜 그렇게 칙칙....."

"런던 이스트엔드에 가서......"


중간에 잭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평과 인신공격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그는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갔다. 어쨌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다. 일주일이 간신히 지나간 것이다. 그러나 잭은 자기 자신에게 칭찬의 의미로 이번 주 주말에 비싼 스테이크를 사주기로 결심했다. 지옥 같은 이 직장에서 버텨낸 자신에 대한 자긍심의 의미로, 또다시 한 주를 더 보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준비로 말이다. 잭은 컴퓨터의 윈도우를 종료시키면서 제시에게 물었다.


"이번 주말에 뭐하실 거에요, 제시?"

"뭐?"

"저는 레스토랑가서 좀 비싼 거나 먹을려고요."


제시는 코웃음을 픽 하고 쳤다.


"그래봤자 네 뱃살만 두꺼워지겠지."

 "뭐 어때서요."


잭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코트를 집어들고 일어섰다.







잭은 토요일 저녁, 분위기 좋은 집 주변의 소규모 식당을 찾았다. 이곳은 관광객들에게 알려져 있는 나름 이름난 맛집으로, 감자 샐러드와 스테이크로 유명한 곳이었다. 저녁이라 그런지 연인들이 보였고 가족 단위의 그룹들도 꽤 있었다. 잭은 탁자에 홀로 자리를 잡았다. 기둥에 매달린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재즈와 소울 풍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식탁에서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로마 향기가 났다. 잭은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메뉴판을 잡았다. 그는 안심 스테이크 미디엄과 라클레타를 시키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거리 밖을 내다보았다. 지난 일주일 간의 누적된 피로를 여기서 몇 시간동안 풀고 갈 셈이었다.


하지만 따르릉하는 익숙한 벨소리와 함께 그의 희망은 조각났다.


그는 재빨리 휴대폰을 집었다. 또 그 망할 편집장이었다. 이런...... 잭은 애타게 부엌을 돌아보았다. 음식이 곧 나올 게 분명했다. 잭은 몇 번 [레예스]라고 써진 파란 휴대폰 창과, 부엌을 몇 번 돌아보다가 결국 전화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네, 레예스?"

"......세바...스찬....."

"예?"


레예스는 한숨을 푹 내쉬고서 말을 이었다.


"문제가 생겼어. 세바스찬이......."

".......네."

"집을 나갔어."

"그래서요?"

"찾아와."


잭은 몇 초 동안 할 말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요?!"
"알아서 해봐!"

"경찰에는요, 연락하셨나요?"


잭은 일단 몸을 일으키고 계산대로 다가갔다. 그는 손짓으로 펜과 종이를 달라는 제스처를 취한 다음 그 위에 '제가 여기서 식사를 할 수가 없을 것 같네요.' 라는 문장을 적고서 현금과 계산서를 탁 소리나게 내려놓고 빠르게 식당을 걸어나갔다. 레예스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경찰 쪽에서 받아주질 않아! 먼저 찾아본 다음에 하라고......"


그러시겠지, 정의를 지키느라 바쁘신 우리의 뉴욕 경찰들, 잭은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노력해 볼게요, 끊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었지만,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감이 안 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세바스찬? 애완견? 아니 어째서 잃어버린 건데? 잭은 막연하게 횡단보도 앞 신호등 옆에 서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당연히 세바스찬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렸다.


"찾았어?"

"그럴 리가 없잖아요, 레예스!"


잭이 짜증을 억누르며 외쳤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레예스의 어조에는 분명히 아까보다 다급해진 어조가 묻어났다.


"꼭 찾아야 해, 잃어버리면 안 된단 말이야!"

"하지만 여긴 뉴욕이에요, 세바스찬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 리가......"


그렇게 자동차 소리를 뚫고 고래고래 외쳐대던 그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CCTV였다. 


"잠깐만요, 레예스......"
"왜, 찾았어?!"


그러나 잭은 전화를 끊었다.





시골 동네도 아닌 도시에서 아주 커다란 덩치의 사냥개가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냥개의 목에 목줄을 매달고 내달리는 금발의 남자, 그는 지금 자신이 일하는 잡지사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출근시간은 이미 놓쳐버린 듯 하다. 하지만 그는 죽을 힘을 다해 애쓰고 있었다. 그가 회전문을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통과하자마자 서류 가방이나 토트백을 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잭은 숨을 헐떡이며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뭐야, 찾은 거야?"



들어가자마자 제시의 잔소리가 쏟아졌지만, 잭은 그의 말 한 마디에 대응할 힘이 없었다. 그는 세바스찬의  목줄을 한 손에 꼭 쥔 채로 벽에 기대에 스르르 쓰러지듯이 앉았다. 저 건너편에서 레예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바스찬?"


그 말에 개가 컹컹 짖더니 힘없는 잭의 손에서 목줄이 너무나 손쉽게 빠져나갔다. 잭은 지금껏 너무나 달린 탓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개의 얼굴을 쓰다듬는 레예스의 인영 쯤은 볼 수 있었다. 제시가 옆에서 속삭였다.


"이 뉴욕에서 저 개를 찾았다고? 아니 아무리 덩치가 크다 해도......"

"CCTV."

 "응?"


제시가 반문하자 잭이 느릿느릿 대답했다.


"내 대학 동기 중에....... 지금 뉴욕......특수수사대에서........ 수사관 일을 하고 있는....... 레나라는 친구가 있어요. 연줄을 좀 썼죠. 덕분에......뭐 운도 좋았고, 뉴욕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어요. 레나가 뉴욕의 감시 카메라들을 전부 털었죠."


제시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머뭇거리다가 곧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잭도 벽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활짝 웃는 얼굴로 레예스를 바라보았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잘해냈다는 생각과 함께.


돌아온 것은 불호령이었다.


"비실비실 웃지마, 멍청해 보이니까."

"......."

"네가 잘했다고 생각하지? 멋대로 판단하지 마, 패션엔 먹통이고 대신 머리가 좋은 비서라면 더 빨리 찾아와야 하는 게 아닌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대체.



잭은 그 날의 악몽이 떠올랐다. 셔츠 색깔을 가지고 몰아붙이던 그 날,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흡이 이제야 돌아와서 그런지 눈에 뵈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시리기만 하고 투명해서 미로에 갇힌 기분이다. 아무 문이나 밀었다. 인정을 못 받는구나, 나는, 그리고 도달한 곳은,


"그가 나를 싫어해요."

"그래서?"


한조가 사진 작업을 하는 사무실이었다. 잭은 들어가자마자 자기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모르겠어요, 난 시키는 대로 다 했다구요. 온갖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

"생각보다 잘 우시네요. 잭 모리슨 씨."


한조는 사진에서 눈을 떼고 잠깐 잭이 우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다시 사진에 열중했다. 잭은 두서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난 정말, 내가 뭘 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럼 그만둬요."


잭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예?"

"그만두라고요. 하기도 싫고, 월급은 쥐꼬리만하고,  상사는 쓰레기 같고."

"......"

"거봐요, 정작 그만둘 용기는 없잖아요. 그게 뭘 뜻하는 건지 알아요? 자기 자신이 한 번 해보겠다는 오기는 있는데 책임을 못 진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만둔다, 그만둔다, 주위한테 협박을 주는 거죠. 그야 당연하죠. 원래 오고 싶어하던 직장도 아니었으니. 그거 알지 말지 모르겠는데, 5분이면 진심으로 그 자리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 당신 대타로 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 말은......"

"나도 알아요, 힘들겠죠, 지치죠. 짜증나죠. 근데 당신은 두 가지를  알아야 해요. 첫째, 레예스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둘째, 당신은 아직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았어요. "


잭은 마지막 말에 말문이 막혔다.


"제, 제가 노력을.......하지 않았다고요?"

"당신이 했다고 생각해요?"


한조가 검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말했잖아요, 5분이면 당신 대타 구한다고. 그 사람들을 이기려면 진정한 노력을 해야 할 겁니다. 그러니까, 정신, 차리, 라고요."


한조는 말을 마치고서 다시 사진에 집중했다. 잭은 눈을 깜빡거리다가, 한조가 작업하고 있는 화보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고, 회색 콘크리트 벽을 바라보았다가, 곧이어 무언가를 깨달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느새 자신의 짙은 파랑색 니트를 매만지고 있었다.


"저기요, 한조. 한조, 한조."


자기를 부르는 말에 한조가 고개를 들었다가 잭의 의중을 알아채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안 될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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