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모리슨,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나 옥수수 농장 일을 하시던 부모님을 돕다가 기자가 되겠다는 원대한 (?) 꿈을 품고 뉴욕으로 상경, 노스웨스턴 대학 입학, 이곳저곳 떠돌기 시작, 결론은 이뤄진 것이 없음. 어쨌든 그랬다. 그의 인생의 이력은 그러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 순간 꽤 큰 혼란의 순간에 빠져있었다.


"잭 모리ㅅ....."

"이제 인사과가 개그를 다 치네. 이런 애를 다 보내?"


어째서 자신이 일류 패션잡지사의 건물 내부에 발을 들인 것인지 그 스스로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몇 가지 명백한 이유는 있었다. 첫째, 그는 월세를 내야 했고, 둘째, 무직이었으며, 셋째, 때문에 구인 센터를 찾아갔고, 넷째, 런웨인지 뭔지 하는 이름만 언뜻 들어본 유명 패션지 편집장의 비서직을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뿐이었다. 사실, 잭은 가망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그 말을 할 때 구인 센터 직원의 표정이 마치 "거길 들어갈 수 있다면 차라리 남창 짓을 하는 게 쉬울 텐데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회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그는 이제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어 눈앞에 옆구리에 손을 짚고 서 있는 남성을 바라보았다. 가운데 가르마다. 신기하게도 그 스타일은 어울렸고, 멋있었다. 그는 이 남자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되게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이었다. 옆구리에 손을 여전히 올려놓고 그를 깔보는 오만불손한 태도만 아니라면 그는 분명 감탄할 것이었다. 잭은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면접......"


그때 전화벨이 따르릉 울렸다. 그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황급히 책상으로 다가가 하얀 전화기를 집어들고 아까의 불손한 태도와는 다르게 아주 공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 제시 맥크리입니다."


잠시 조용하더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갑자기 빠른 속도로 다이얼을 누르고 외쳤다. 


"레예스 떴다! 전원 비상 사태!"

"뭐?"


그와 거의 동시에 잭의 등 뒤에서 긴 검은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동양 남자가 등장하더니 불쑥 물었다.


"아침에 마사지 받고 온다고 하지 않던?"

"그랬었지, 근데 그 망할 마사지사가 교통사고를 당했대!"


동양 남자는 일본어 같은 단어 몇 개를 내뱉더니 다시 휙 사라져 버렸다. 당황한 이들은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무언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책상 위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느라 바빴고, 여자들은 화장을 고치거나 슬리퍼를 신었던 발에 급히 구두 (아주 비싸 보이는)를 끼웠다. 제시는 구석에 있던 냉장고에서 탄산수를 가져오더니 급히 따랐고, 곧 여러 잡지들은 주르륵 늘어놓았다. 잭은 눈을 굴리면서, 그리고 민망함을 참으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리고 이상하게도 어디서부턴가 수많은 사람들의 물결이 모세의 기적과도 같이 갈라지는 느낌이 들더니, 순식간에 모든 이들은 조용해졌으며, 제시는 잭의 눈앞에서 총알처럼 튀어나가 저 멀리 있는 유리 출입문 쪽으로 달려나갔다. 

잭은 보았다. 큰 키에 저 비싸 보이는 (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옷이 그랬다) 코트와 스카프, 넓은 어깨, 어두운 피부, 짧고 곱슬거리며 고집이 무척이나 세 보이는 머리, 제시는 그의 가방이며 옷들을 받고 지시사항들을 적느라 정신이 없었다. 잭은 그들이 그의 옆을 지나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레드 열풍은 지났어. 2년 전에 끝난 유행을 지금 갔다놓으라고? 레드는 안 된다고 무조건 전해. 그리고 난 그녀에게 뮬을 신길 생각은 절대 없어. 디저트는 쉬폰 케이크라고 했지 않았나? 더해서......"


잭은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히 좆됐군.


".....여기 이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지?"


제시가 끼어들었다.


"아, 신경 쓰실 거 없어요. 그게요, 새 비서 후보라고 인사과에서 보냈는데, 전혀 가망이 없어서요, 그럼......"

"아니, 네가 최근에 보낸 애들 다 아니었어. 내가 면접 볼 거야."


제시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쳤고, 그건 잭도 마찬가지였다. 잭이 어쩔 줄 몰라 망설이는 사이, 레예스가 물었다.


"우리 잡지사에 지원한 계기가 뭐지?"

".....구인 센터에서 추천을 해줬거든요."


잭은 진실에 기초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꽤 충실하다고. 비록 자신을 노려본 레예스의 눈빛이 매의 그것과 같았을지라도. 레예스는 흠, 하는 소리를 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자네는 패션 감각이 없나?"

".....예?"

"패션 감각. 컬러나, 매치 같은 거 말이야. 아니면 브랜드라도."


잭은 대답을 고민했다. 그는 자신의 약간 헐렁한 니트를 내려다 보았다.


"저는 그런 걸 신경쓰지 않아서요."

"패션잡지 편집장의 비서로 일하는 자리인데 패션감각이 없다? 말이 된다고 생각해?"

"굳이 상관이 있지는....."

"면접 끝, 가 보게. 안 되겠어."


레예스는 시선은 잭이 아닌 아까 제시가 늘어놓은 잡지로 돌렸다. 잭은 천천히 등을 돌리려다가, 결국 다시 방향을 돌리고 레예스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레예스는 약간 놀란 눈치였다. 그가 물었다. 


"왜지?"

"맞아요, 저는 패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고 브랜드 하나 아는 게 없어요. 하지만 그거 아세요? 글도 잘 쓰고, 똑똑하다는 거. 보기보단 힘도 세다는 거. 여기 남자들이 옷 구겨질까봐 쓰레기통 하나 못 치울때 저는 아마 막 들고 다닐 수 있을 거에요. 솔직히 서류 정리하고 전화 연결하고 커피 타는 일에 연미복을 입고 해야 하나요?"


일순간 레예스는 아무 말이 없었고, 잭은 고개를 까딱 숙였다. 그에게 소리내어 인사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잭은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왔다. 속이 다 후련했다. 저런 패션 찬양자들, 옷이 다 무슨 소용인데!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금빛 회전문 앞에 다다르기 직전,


"잭 모리슨!"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제시였다. 잭이 뒤를 돌아보자 그가 손짓으로 잭을 부르고 있었다. 



.....나 설마,



채용인가.










+연재는_가능할_것인가_쿠쿠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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